가상자산 거래소, 금융권의 새 성장축으로 부상…은행·증권사 지분 참여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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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토큰증권 시장 부상에 금융권 거래소 투자 본격화
한동안 규제 불확실성과 은행 실명계좌 의존도 때문에 금융권의 거리두기 대상이었던 가상자산 거래소가 최근 전통 금융사의 전략적 투자처로 재평가되고 있다. 디지털자산 관련 제도 정비가 속도를 내고,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STO), 법인 고객 대상 디지털자산 서비스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거래소의 사업적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내 주요 원화마켓 거래소 가운데 일부는 이미 은행·증권사·빅테크·대기업 계열사를 주주로 확보하며 금융권과의 연결고리를 넓혀가고 있다. 과거 거래소가 은행과의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계약에 의존하던 구조였다면, 이제는 금융사가 거래소의 지분을 직접 확보하며 디지털자산 생태계 안으로 들어오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거래소 지분 구조에 들어온 전통 금융사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주요 거래소의 주주 구성이 금융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창업자 중심의 경영권이 유지되는 가운데, 한화투자증권, 하나은행, 삼성 계열사 등 전통 금융 및 대기업 계열 투자자들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두나무는 여기에 네이버파이낸셜과의 포괄적 주식 교환 및 합병 이슈까지 맞물리면서 단순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을 넘어 금융·빅테크·디지털자산이 결합된 플랫폼 기업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네이버의 금융 서비스 기반과 두나무의 디지털자산 거래 인프라가 결합될 경우, 국내 디지털 금융 시장의 경쟁 구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코인원 역시 창업자와 기존 주요 주주 외에 한국투자증권, 해외 가상자산 관련 투자자가 참여하면서 증권업계와의 접점을 강화했다. 코빗은 미래에셋 측이 대주주 지위를 확보하면서 사실상 전통 금융그룹의 디지털자산 사업 확장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 같은 흐름은 거래소가 더 이상 독립적인 가상자산 사업자에만 머물지 않고, 금융그룹의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 안으로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리스크 업종’, 지금은 ‘미래 인프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상자산 거래소는 금융사 입장에서 부담이 큰 업종으로 분류됐다. 자금세탁방지, 투자자 보호, 가격 변동성, 규제 공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은행과 증권사들은 거래소와의 협업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제도가 도입된 이후 원화마켓 운영 여부는 사실상 은행과의 계약 유지에 달려 있었다. 거래소가 원화 거래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체결해야 했고, 이 계약이 중단되거나 갱신되지 않으면 사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 거래소와 은행의 관계는 협력이라기보다 심사와 관리에 가까웠다. 은행은 거래소의 내부통제, 자금세탁방지 체계, 고객확인 절차 등을 평가했고, 거래소는 원화마켓 유지를 위해 은행의 요구 기준을 충족해야 했다. 특정 거래소의 은행 재계약 여부가 시장의 주요 변수로 거론될 정도로 은행의 영향력은 컸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금융사가 거래소를 단순히 관리해야 할 위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향후 디지털 금융 시장에서 반드시 확보해야 할 인프라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STO가 거래소 가치를 바꿨다
거래소의 몸값을 다시 평가하게 만든 핵심 요인은 디지털자산 시장의 제도화 가능성이다. 가상자산이 단순 투자 상품에 머무르던 시기에는 거래소 수익의 대부분이 거래 수수료에 집중됐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토큰증권, 실물자산 토큰화, 법인 대상 커스터디 및 투자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거래소의 역할은 훨씬 넓어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와 송금, 기업 간 정산, 글로벌 자금 이동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토큰증권은 부동산, 채권, 미술품, 비상장 주식 등 다양한 자산을 디지털 방식으로 유통하는 시장을 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거래소는 단순 매매 중개자가 아니라 발행, 유통, 보관, 고객 확인, 시장 감시 기능을 연결하는 핵심 접점이 될 수 있다.
전통 금융사들이 거래소 지분 투자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은행은 법인 고객과 결제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고, 증권사는 투자 상품 설계와 자산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다. 거래소는 디지털자산 거래 시스템과 이용자 기반, 가상자산사업자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세 영역이 결합되면 향후 제도권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강한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
단순 재무 투자가 아닌 전략적 포석
최근 금융사들의 거래소 투자는 단순히 지분 가치 상승을 기대한 재무적 투자로만 보기 어렵다. 오히려 향후 디지털자산 시장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을 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에 가깝다.
증권사는 토큰증권과 디지털 투자상품 유통을 염두에 둘 수 있고, 은행은 스테이블코인과 법인 고객 대상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고려할 수 있다. 자산운용사와 금융지주 계열사는 ETF, 랩어카운트, AI 자산관리, 토큰화 자산 등을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연결하는 미래 금융 모델을 구상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거래소 지분은 단순한 투자자산이 아니라 디지털 금융 인프라에 접근하기 위한 전략적 입장권에 가깝다. 특히 이미 가상자산사업자 지위를 확보한 거래소와 관계를 맺은 금융사는 향후 규제 체계가 명확해질수록 시장 진입 비용을 줄이고 사업 확장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법인 고객 시장이 다음 경쟁 무대
앞으로 가장 주목되는 영역은 법인 고객 대상 디지털자산 시장이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는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형성돼 있지만, 제도적 장치가 정비되면 기업의 디지털자산 보유, 운용, 결제, 투자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은행과 증권사가 이미 확보한 법인 고객 네트워크는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기업 고객이 디지털자산 투자나 토큰화 자산 거래를 검토할 때, 금융사가 지분을 보유하거나 협력 관계를 맺은 거래소로 수요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 입장에서도 금융권 주주는 신뢰도와 제도권 접근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가상자산 거래소는 기술력과 이용자 기반을 갖췄음에도 규제 리스크와 금융권과의 거리감 때문에 사업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은행·증권사와의 지분 관계가 강화되면 향후 신사업 추진 과정에서 보다 안정적인 협업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디지털자산 시장의 주도권 경쟁 본격화
전통 금융권의 거래소 지분 참여 확대는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거래소가 은행 실명계좌 확보 여부에 따라 생존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은행과 증권사가 거래소를 통해 미래 금융 시장에 진입하려는 상황이 됐다.
물론 변수는 남아 있다. 디지털자산 관련 법과 감독 체계가 어떻게 정비되는지,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 시장이 실제로 어느 정도 성장할지, 거래소의 내부통제와 투자자 보호 체계가 금융권 기준에 부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변화는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더 이상 변두리 투자 플랫폼으로만 취급되지 않는다. 금융권은 거래소를 디지털자산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보기 시작했고, 거래소는 전통 금융사의 자본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제도권 금융시장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결국 앞으로의 경쟁은 단순히 어느 거래소의 거래량이 많은가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누가 은행, 증권, 빅테크, 법인 고객, 디지털자산 인프라를 가장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가 다음 단계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