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쩐의 전쟁'… 영끌로 증시 달리는 서민 vs 600조 현금 안은 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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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예금으론 부족해"… 1억 미만 소액 정기예금 6년 반 만에 최저치
시중 자금의 흐름이 두 개의 전혀 다른 온도로 나뉘고 있다. 일반 투자자들은 쥐꼬리만 한 이자를 주는 은행을 박차고 나와 빚까지 끌어쓰며 주식 시장으로 돌진하는 반면, 거액 자산가들은 오히려 막대한 현금을 은행 금고에 쌓아두며 방어벽을 높이는 극단적인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포착됐다.
"이율 낮아 저축 포기"… 쪼그라든 서민들의 통장
5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경제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일반 대중의 자금 이탈 러시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2025년 마감 기준, 시중은행에 예치된 금액이 1억 원을 밑도는 소액 계좌 수는 총 2,162만 9,000개로 파악됐다. 이는 1년 전과 비교해 3.1%나 증발한 수치이자, 2019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6년 6개월 만에 가장 초라한 기록이다.
이들 소액 계좌에 담긴 전체 뭉칫돈 역시 전년 대비 2.2% 줄어든 299조 7,090억 원에 그쳤다. 물가 상승을 따라잡기 힘든 예금 이자율에 실망한 층이 전통적인 저축을 포기하고 자본 시장으로 시선을 돌린 결과로 풀이된다.
124조 원 넘게 쌓인 대기 자금, 그리고 아슬아슬한 '빚투'
은행을 빠져나온 돈은 고스란히 증권가로 흘러들었다. 금융투자협회 집계를 보면,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파생상품 관련 예수금을 제외한 투자자들의 주식 대기 자금(예탁금)은 124조 7,591억 원까지 폭증했다. 여기에 단기 자금 운용처인 환매조건부채권(RP) 잔액마저 115조 원을 거뜬히 돌파하며 엄청난 유동성이 시장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레버리지'의 급팽창이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에 베팅하는 신용거래 융자 총액은 같은 날 무려 35조 7,131억 원까지 치솟았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는 개인들의 공격적 성향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무리한 투자의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주식을 산 뒤 이틀 뒤(T+2)까지 대금을 치르지 못한 위탁매매 미수금이 1조 1,151억 원에 육박했고, 끝내 돈을 구하지 못해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팔아치운 반대매매 액수도 146억 9,800만 원이나 발생했다.
철저한 '수성(守城)'… 현금 607조 원 거머쥔 자산가들
이처럼 평범한 투자자들이 대출까지 동원해 불나방처럼 위험 자산에 뛰어들고 있지만, 정작 '큰손'들의 자금 운용표는 철저히 원금 보장에 맞춰져 있다.
2025년 말 기준, 잔액이 10억 원을 넘어서는 초고액 예금 계좌는 5만 9,000개로 전년보다 개수 자체는 3.3% 감소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 계좌에 묶여 있는 전체 금액은 오히려 6.7%나 덩치를 키우며 607조 1,75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시장에 돈이 도는 현상을 넘어 자산 배분의 극심한 양극화를 시사한다. 지수가 고점에 다가설수록 서민들은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감에 빚을 내 위험 자산에 올라타지만,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고액 자산가들은 향후 다가올 조정장과 변동성에 대비해 철저하게 현금성 안전 자산을 쥐고 관망하는 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