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비은행 결제 접근 문 연다… 핀테크·크립토 업계에 ‘좁은 통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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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준, ‘지급 계좌’ 도입 검토… 핀테크·디지털자산 기업 결제망 접근 확대되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핀테크와 디지털자산 관련 금융기관에 연준 결제 인프라를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 전통 은행이 사실상 독점해 온 중앙은행 결제망 접근 구조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과 크립토 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연준은 2026년 5월 20일, 법적으로 자격을 갖춘 금융기관이 결제와 청산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지급 계좌(payment account)’ 도입안에 대해 공개 의견 수렴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 계좌는 기존 은행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마스터 계좌와 달리 기능이 제한된 형태로 설계됐다.
핵심은 ‘직접 연결’… 다만 은행과 같은 혜택은 없다
이번 제안의 핵심은 비은행 금융기관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연준의 지급결제 서비스를 직접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핀테크나 크립토 기업들은 대체로 은행을 거쳐 결제망에 접근해야 했기 때문에 비용, 속도, 운영 통제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연준이 제안한 지급 계좌는 전면 개방이 아니다. 계좌 보유 기관은 연준 결제망을 통해 자금을 이동시킬 수 있지만, 전통 은행이 누리는 주요 안전장치는 제공받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일중대출, 재할인창구 이용, 준비금 이자 지급 등은 제외된다.
즉, 이번 방안은 핀테크와 크립토 기업에 “은행 수준의 지위”를 주는 것이 아니라, 결제와 청산에 필요한 최소 기능만 허용하는 방식에 가깝다.
‘스키니 마스터 계좌’ 논의가 제도권으로
시장에서는 이 방안을 이른바 ‘스키니 마스터 계좌’ 논의의 제도화로 보고 있다. 마스터 계좌는 흔히 “은행을 위한 은행 계좌”로 불리며, 보유 기관이 연준 결제망을 통해 직접 자금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준다. 핀테크와 크립토 기업들은 오랫동안 이 접근 권한을 요구해 왔다.
연준은 앞서 2025년 12월에도 지급 계좌 프로토타입에 대한 의견을 구한 바 있으며, 이번에는 이를 보다 구체적인 제안 형태로 발전시켰다. 기존 발표에서도 연준은 지급 계좌가 마스터 계좌와 구분되며, 법적 자격 범위를 새로 확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크립토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
디지털자산 업계가 이번 제안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 거래소, 디지털자산 수탁사 등은 빠르고 안정적인 달러 결제 인프라가 사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은행을 거치지 않고 연준 결제망에 직접 연결될 수 있다면 결제 지연과 중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특히 크라켄은 2026년 3월 연준 마스터 계좌를 승인받은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이후 리플, 앵커리지 디지털, 와이즈 등도 유사한 접근 권한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보도됐다.
다만 이번 지급 계좌가 모든 크립토 기업에 자동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연준은 법적으로 자격을 갖춘 기관만 신청할 수 있다는 기존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 적용 범위는 향후 세부 심사 기준과 지역 연방준비은행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은행권은 리스크를 우려
전통 은행권은 신중한 입장이다.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비은행 기관이 중앙은행 결제망에 직접 접근할 경우 운영 리스크, 유동성 리스크, 자금세탁 방지 문제 등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마이클 바 연준 이사는 이번 제안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연준이 직접 감독하지 않는 기관에 계좌를 허용할 경우 불법 금융 활동을 막기 위한 장치가 충분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 같은 반대는 향후 의견 수렴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혁신을 위해 결제망 접근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과, 중앙은행 인프라의 안정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압박도 변수
이번 제안은 미국 행정부의 금융 혁신 정책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5월 19일 금융 혁신을 저해할 수 있는 규제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여기에는 핀테크와 비은행 기관의 연준 결제 서비스 접근 문제도 포함됐다.
연준의 지급 계좌 제안이 이 같은 정치적 압박과 별개로 추진된 정책인지, 아니면 행정부 기조와 맞물려 속도를 낸 것인지는 향후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제 혁신과 금융 안정 사이의 시험대
이번 지급 계좌 제안은 미국 결제 시스템의 문턱을 낮추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핀테크와 디지털자산 기업에는 중앙은행 결제망과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열리고, 소비자와 기업 입장에서는 더 빠르고 저렴한 결제 서비스가 등장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 결제망은 단순한 기술 인프라가 아니다. 금융 시스템의 신뢰와 안정성을 떠받치는 핵심 장치다. 연준이 제한적 계좌라는 절충안을 꺼낸 것도 혁신과 리스크 관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향후 관건은 세 가지다. 누가 법적으로 지급 계좌를 신청할 수 있는지, 어떤 리스크 관리 기준이 적용되는지, 그리고 크립토 기업이 실제로 이 제도 안에 얼마나 편입될 수 있는지다. 이번 제안이 최종 확정될 경우 미국 결제 시장의 경쟁 구도는 은행 중심에서 보다 다양한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구조로 서서히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